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이 본문의 내용은 이일하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님의 저서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애들레이드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맺은 좋은 인연으로 흔쾌히 연재를 허락해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문의 모든 내용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사전 허락 없는 무단 복제, 전재 및 배포를 엄격히 금합니다.

하단 게시판에서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2부·생명은 반복한다

하나의 흐름인 생명체는 그 흐름이 중단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의 이른 초기 역사부터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영속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개체로서의 영속은 불가능하지만 생명의 흐름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가는 것은 가능함을 알아낸 것이다. 생명이 소멸되지 않고 영속하는 방법은 바로 세포분열이다. 세포분열을 통해 생명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식을 낳고, 죽는 과정을 반복한다. 세포가 세포를 낳고, 또 세포가 세포를 낳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지구 상에서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

세포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는 기왕에 존재하던 세포에서 유래한다. 현재 지구의 어느 공간에서도 새로이 창조되는 세포는 없다. 이를 세포론이라 한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라는 아주 작은 단위체로 구성되어 있다.

코끼리만 한 세포가 존재하지 못하는 물리적 이유는 엔트로피 때문이다. 세포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의 엔트로피, 즉 에너지의 지속적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화학 반응은 무질서를 축적하게 되는데, 생체 내 화학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화학 반응이 진행된 후 반응찌꺼기가 남아 무질서하게 축적된다. 세포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의 투입과 반응찌꺼기의 방출이 효율적으로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의 투입과 찌꺼기의 방출은 세포가 바깥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창이라 할 세포막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포 내용물, 즉 세포의 체적과 세포막의 표면적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세포 내외로의 물질 수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세포가 가질 수 있는 최대 크기가 제한되고 그 이상의 크기로 커지면 세포분열을 통해 세포를 작게 분할하게 된다.

세포분열

세포가 분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체세포분열이고 다른 하나는 감수분열이다. 체세포분열은 정확하게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가진 딸세포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고, 감수분열은 가능하면 다양한 유전 정보를 가진 정자나 난자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체세포분열의 결과 내 몸을 구성하는 수십조 개의 세포가 모두 동일한 유전체(게놈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화되었으므로 앞으로는 게놈이라 함)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반면 감수분열의 결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타나게 된다. 현재까지 지구 상에 생존했던 1,000억 명의 인구 중 어느 누구도 나와 똑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인간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감수분열을 통한 유전적 다양성은 고등동식물에서 성이 나타난 진화적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커다란 환경 변화에도 고등동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변이종이 항상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등동식물이 병원균에 의한 멸종을 피하기 위해 성을 선택했다는 이론이 제안되기도 했다. 병원균의 빠른 진화 속도를 쫓아가기 위해서 고등동식물이 성을 통한 유전적 다양성을 꾀했다는 것이다.

유전의 법칙

세포분열 과정이 현미경으로 관찰되기도 전에 멘델은 순전히 통계 처리를 통해 유전의 법칙을 찾아냈다. 이 법칙의 발견으로 멘델은 유전을 결정해주는 어떤 인자가 있음을, 즉 ‘유전 물질의 입자성’을 분명히 인식시켰다. 분리의 법칙도, 독립의 법칙도 모두 유전인자가 입자성을 가지고 배우체에 나뉘어 담긴다는 원리를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세포생물학자들이 세포분열을 통해 반복되는 생명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구나 유전 물질이 염색체에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됨으로써 멘델 이후 35년 뒤 유전 법칙이 재발견된다. 이때부터 생물학자들은 유전 물질의 화학적 특성, 정체성에 대해 이런저런 담론을 나누게 된다.

생명은 자기 복제 시스템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유전 물질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물질이 단백질이라 생각했다. 생명 현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담을 수 있는 물질로 단백질을 꼽은 것이다. 단백질은 그 단위체인 아미노산이 20종이나 되어 매우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고, 더구나 당시의 효소학적 연구를 통해 단백질의 뛰어난 화학적 특성(단백질은 생명체에 생물학적 기능을 제공한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순간 유전 물질이 DNA라는 것을 순식간에 알게 되었다. DNA는 매우 단순한 단위체,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AT, GC 염기쌍 규칙에 따라 복제성을 가진 분자임이 너무나 쉽고 명쾌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자기 복제성 분자를 찾아냄으로써 우리는 생명에 대한 집단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치 안개가 걷힌 뒤 시야가 확 트이는 것처럼 우리는 생명이 자기 복제 시스템임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생명은 DNA라는 정보 매체에 자신의 정보를 담아 세포에서 세포로, 세대에서 세대로 복제하여 전달한다.

3부·생명은 해독기다

DNA에 저장된 정보는 단백질합성의 정보라고 했는데, 디지털 정보 (DNA 정보)가 아날로그 정보(단백질 정보)로 전환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특정한 염기 서열의 정보가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전환되면 단백질이 합성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해독을 위한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110볼트 가전기기를 120볼트용 가전기기에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전압을 전환시키는 어댑터가 필요하듯이, 염기 서열 정보를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어댑터가 필요하다. 이러한 어댑터 역할을 하는 분자가 tRNA이다. 리보좀은 DNA에 들어 있는 디지털 정보를 읽어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전환하는 세포소기구이다.

정보를 해독하는 과정

세포는 물주머니와 같으며, 주머니 속에 인지질로 이루어진 작은 포켓들이 중첩되어 포개진 구조로 되어 있다. 세포 내부는 인지질 포켓에 의해 더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이렇게 분할된 공간들은 세포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들을 나눠 맡고 있다. 일종의 분업과 협업이 유기적으로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분업과 협업의 예를 침샘세포에서 분비되는 아밀라아제 효소의 생성으로 살펴보자.

아밀라아제라는 효소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생산되기 위해서는 세포핵 속에 저장된 DNA 정보 가운데에서 아밀라아제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복사하는 전사가 일어나야 한다. 이때 복사된 전사체는 RNA 형태이며, 핵 속에서 생성된 뒤 세포질로 방출된다. DNA 정보를 곧장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는 DNA의 길이가 너무 길어 대단히 거추장스러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100여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관악캠퍼스에서 20동 건물을 지으려면, 20동에 대한 설계도만 있으면 되지 관악캠퍼스 설계도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전체의 설계도 원본은 놔두고 20동에 대한 설계도만 복사해서 가져와 20동을 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밀라아제 효소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2만 1,000여 개의 단백질 정보를 가진 전체 게놈 정보를 다 가지고 다니면서 이용할 필요가 없다. 자연은, 특히 생물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밀라아제 효소 유전자를 복사하여 만든 복사체, RNA를 생성한다. 생성된 아밀라아제 복사체 RNA는 핵 밖으로 나오면 리보좀에 의해 해독되어 단백질을 생산하게 된다. tRNA라는 어댑터는 세 염기 단위로 RNA 서열을 읽어 아미노산 정보로 전환해준다. 3염기가 하나의 아미노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된 아밀라아제는 소포체라는 세포 내의 작은 공간에서 만들어진 다음 골지체 등에서 가공되고, 리소좀이라는 작은 지질 주머니를 거쳐 세포막 밖으로 방출된다. 이 과정에 세포 내의 다양한 소공간들이 분업과 협업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부·생명은 정보다

게놈을 생명의 설계도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그 속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정보가 들어 있다. 하나는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유전자 목록에 대한 정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유전자들이 언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유전자 조립 순서에 대한 정보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유전자 발현 조절 정보’라고 한다.

게놈 속의 정보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의 총합을 게놈이라고 한다. 이 게놈 속의 정보를 흔히들 청사진에 비유한다. 생물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설계도라는 의미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가장 잘못된, 적절치 못한 비유가 이 청사진 비유가 아닌가 한다. 게놈에 들어 있는 정보는 청사진 정보가 아니라 오리가미, 즉 종이접기의 순서도 정보로, 이 둘은 대단히 다른 정보이다. 예를 들어 종이배를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종이배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설계도 방식과 오리가미 방식이 있다. 청사진으로 상징되는 설계도 방식은 종이배의 각 부위를 섹션별로 나누어서 각각이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때는 길이와 각도, 높이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어린아이에게 종이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어른은 없다. 그렇게 가르쳐줬다가는 아이들이 종이배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는커녕 그것이 기적의 산물이라 오해할 것이다. 종이배는 당연히 접는 순서를 가르쳐야 한다. 접는 순서를 가르치면 아무리 복잡한 오리가미라도 만드는 법을 쉽게 익힐 수 있다. 게놈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는 당연히 쉽고 효율적인 오리가미 정보이다.

인간의 게놈은 30억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A, T, G, C라는 문자로 이루어진 책에 30억 개의 활자가 찍혀 있는 것이라 비유할 수 있다. 이 게놈 정보 안에는 대략 2만 1,000개의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유전자 정보는 단백질합성에 대한 정보이다. 따라서 인간 게놈에는 2만 1,000개의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단백질 생성의 정보가 들어 있다. 위스콘신 대학의 진화발생학(이보디보라고도 한다) 전문가 션 캐럴은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에서 2만 1,000개의 유전자만 있으면 지구 상의 아무리 복잡한 생물체라도 모두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물발생학 전문가인 나 또한 이 의견에 동의한다. 2만 1,000개의 유전자를 가지면 인간이라는 고귀한 생명체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유전체학이 발달하면서 놀라운 사실이 쏙쏙 밝혀지고 있다. 인간이 가진 유전자의 총 수가 2만 1,000개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라는 동물과 비교하면 전체 게놈에서 고작 1.3퍼센트의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그 생김새나 생물학적 특성의 유사성으로 미뤄보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진 인문학자들에게는 이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듯하다. 1.3퍼센트의 차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인간과 침팬지라는 그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아직은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연구해봐야 할 테지만, 지금까지 얻은 결과로는 대단히 사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토록 작은 차이로부터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인간적 특성들이 발현되었고, 진화되어갈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게놈의 유사성은 단지 침팬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척추동물 모두에 해당된다. 이를테면 인간과 생쥐의 게놈 내 유전자의 총 수는 거의 같다. 더구나 유전자가 배열되어 있는 순서조차 96퍼센트 유사하다. 인간과 생쥐를 만들어내는 유전자 목록의 정보는 사실상 거의 같다. 따라서 두 생물 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부품들을 언제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조립 순서의 차이다. 오리가미 순서도의 순서를 적용하는 차이가 엄청나게 다양한 척추동물들을 빚어내는 것이다.

게놈 정보의 활용: 배발생

생물의 배발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오리가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수 있다. 특히 척추동물의 배발생 과정은 오리가미의 순서가 어떻게 결정되어왔는지, 그 진화적 과정까지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발생하는 배가 어류처럼 보였다가 양서류처럼 되고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거쳐 인간이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오리가미의 순서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창조되었어야 마땅하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쏙 들어가게 만들 수 있다. 생물의 발생 과정은 저절로 부풀어 오르는 종이접기이며, 종이접기가 진행되는 동안 각 부분들이, 즉 부분을 차지한 세포들이, 게놈의 정보를 활용해 끊임없이 더 작은 부분들을 접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지상 최대의 쇼』에서 수천 세대 이후까지 후손들에게 정확히 ‘이런 모양의 생물체를 만들라’는 교지를 내리기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 했다. 이러이러한 순서대로 접으라고 하는 순서도 정보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생물의 모듈성

별로 다르지 않은 게놈 정보를 이용하여 그토록 다양한 생물 형태를 빚어낼 수 있는 근원은 신체 부속지들이 모듈화되어 있는 생물체의 특성에 있다. 즉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어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식물체를 생각해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을 이름은 몰라도 단번에 그것이 식물임을 알게 하는 것은 식물의 단순한 모듈, 즉 줄기와 잎이 반복되는 모듈 때문이다. 식물이 가장 단순한 모듈의 예를 보여주지만 동물도 모듈화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초파리를 보면 모두 8개의 마디(체절)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파리를 떠올려보라. 엉덩이 부위에 마디가 보일 것이다. 흉부 또한 3개의 마디로 되어 있다. 이들이 모두 모듈화되어 있는 체절이며, 각 체절들은 유사성을 가짐과 동시에 상이성을 가진다. 어떤 체절에는 날개가, 어떤 체절에는 다리가 붙어 있는 등 변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곤충의 비유에서 체절 간의 유사성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 당신의 손가락 마디를 들여다보라. 엄지, 검지, 중지에 따라 길이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세 마디로 이루어져 있고 마디 간의 길이는 모두 황금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마디별, 즉 체절별 유사성과 상이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유전학적으로 표현하면 유사성의 특성은 같은 종류의 유전자 작용에 의해, 상이성의 특성은 다른 종류의 유전자 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생물 개체의 발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유사성과 상이성이 모듈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수의 유전자만으로도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함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생물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많지 않은 유전적 차이로 각 종마다 매우 다양한 생물적 특성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면 모든 생물체는 모듈화되어 있다. 모듈화된 신체 부속지들은 비슷한 유전자 툴킷을 이용해 동일한 방식으로 각 부속지들을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2만여 개의 유전자가 있으면 아무리 복잡한 생물체라도 능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5부·생명은 진화한다

우리는 아직 이유를 모르지만 영원히 살지 못한다. 40억 년의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영원히 사는 방법을 깨친 생명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생명체는 영원히 살기 위한 대안으로 복제성을 선택했다. 복제를 통해 자신이 가진 정보를 대대손손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제는 에러를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확률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적 평형 상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에러를 피할 수 없는 복제기계는 변이를 만들어내고, 그 변이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생명체에게 진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끝나지 않는 군비경쟁

2009년 한 해 창궐한 신종플루는 전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건과 진화에 대해 공부시켰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대개 바이러스 아니면, 박테리아이다. 물론 말라리아처럼 기생충이 병원체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유행병은 대부분 이 두 부류에 속한다. 바이러스가 병인인 경우에는 반드시 사람 세포의 수용체 단백질과 바이러스의 침투 단백질 간의 결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두 단백질이 결합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3차 구조가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러한 단백질과 단백질의 결합, 혹은 상호 작용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왜 인간이 그런 수용체 단백질을 가지고 있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런 수용체 단백질이 없으면 바이러스가 와서 결합하지 못할 것이고 당연히 병에 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 마시라! 수용체 단백질은 바이러스와 결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따로 목적이 있어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단백질이다. 바이러스가 진화하여 그런 중요한 기능을 가진 인간의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하는 감염 단백질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병에 걸리는 것이다.

익숙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인간에게 에이즈(AIDS)라는 질병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100년 전에는 이런 질병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약 100년 전 카메룬 남동부 지역에서 침팬지로부터 유사 질병이 인간에게로 전염되면서 에이즈는 인간의 질병이 되었다. 침팬지를 감염시키는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키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바이러스로 진화한 것이다. 이후 1960년대 콩고에서 면역주사를 놓다가 HIV로 오염된 주사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인간 사회에 널리 확산되고 말았다. 이는 자크 페핀이 『AIDS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에이즈의 사례에서 우리는 바이러스가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숙주를 바꿔버린 진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진화가 가능한 이유는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사소한 변화가 일어나 침팬지세포에 결합하던 gp120이라는 감염 단백질이 인간세포의 CD4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할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대개 유전적 변이가 쉽게 일어나고, 특히 HIV바이러스는 이러한 변이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는 바이러스로 악명 높다. 에이즈 기원의 사례에서 우리는 또한 병원체의 숙주 특이성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숙주가 있고, 침투할 수 없는 숙주가 있다. 이를 숙주 장벽이라 하는데, 침팬지에 감염되는 SIV는 인간을 숙주로 침투할 수 없고, 인간에 감염되는 HIV는 침팬지를 숙주로 침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다른 동물에 치명적인 병을 유발하는 병원체가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RS(사스)나 신종플루, 조류 독감 등은 가금류에서 인간에게로 전염되는 질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는 바이러스가 재빨리 진화해서 숙주 장벽을 넘어오는 경우다. 이 경우 인간에게는 항체가 없기 때문에 대유행병으로 확산되어 세계 보건에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 또한 생명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다시 신종플루 이야기로 넘어가자. 1919년 스페인독감으로 대유행했던 신종플루는 90년 동안 인간과 끝나지 않는 군비경쟁을 벌였다. 독감이 한 번 창궐하고 나면 인간 개체군 내에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체계인 항체가 형성되고, 그러면 더 이상 독감이 확산되지 않고 잠잠해진다. 그러다 플루 바이러스의 일부가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면역 체계를 뚫고 들어가면 다시 인간 세계에 확산되어 유행성 독감이 나타나게 된다. 최근 이 과정을 분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가 인간의 면역 체계에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표면단백질을 끊임없이 다르게 위장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병과 병원체는 숙주, 즉 우리 몸의 방어 체계와 끊임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공진화를 해온 것이다. 이렇듯 2009년 신종플루의 창궐은 진화의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진화의 분자 메커니즘

바이러스는 물론 생명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진화를 훌륭한 진화의 사례라고 설명하면 반박하는 창조론자들이 있다. 바이러스는 생명의 가장 중요한 두 특성, 복제와 변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구태여 논박한다면 그냥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분자적 메커니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 책에서는 주로 진화가 일어나는 분자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진화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분자적으로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은 것이 이 단원의 목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화가 사실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빅뱅 이후 137억 년이 지났다. 그리고 빅뱅 당시의 뜨거운 우주에는 생명이란 것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된 것이 50억 년 전, 이는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최초 지구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이후 50억 년 동안 매우 단순한 생명에서, 즉 아주 단순한 시작에서 출발하여 점점 더 복잡하고 세련된 생물체가 하나둘씩 지구 상에 나타난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생물종들이 출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1분 동안 인류가 출현하여 지구의 지배자인양 행세하고 있다(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환산하면 인류는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창조되었다는 말은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진화의 사례는 너무나 많아 이 책에 도저히 다 담을 수조차 없다. 이러한 사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소개한 책이 제리 코인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진화론 대 창조론의 논쟁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진화에 관한 엄청난 증거들이 현대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쏟아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진화의 분자 메커니즘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마치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진화론을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했듯이, 나는 진화가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줌으로써 진화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사실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갈무리에서 인용했다. 원 내용은 “정해진 중력 법칙을 따라 이 행성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생물종들이 진화해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갈 것이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생명의 진화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한 지 약 40억 년, 호주 필라바에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35억 년 전 지구 상에 번성했던 박테리아의 화석이다. 이후 지질학적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복잡하고 정교한 생명체가 출현하기 시작했으니, 중요한 사건별로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24억 년 전 광합성을 하는 생물 개체가 급격히 증가하여 산소폭증기(great oxidation)가 있었고, 약 10억 년 전 원핵생물인 박테리아보다 세포 내막계가 복잡한 진핵생물이 출현했다. 이후 곧장 세포별로 기능이 분화된 다세포생물이 나타났다. 4억 5,000만 년 전에는 최초의 육상식물이 출현했고, 3억 년 전 페름기에 이르러 포유류의 조상인 단궁류가 출현했다. 그러나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 사건을 겪으면서 다수의 생물종이 갑자기 사라졌으며, 그 빈 생태적 공간을 공룡들이 차지하여 쥐라기, 백악기에 걸쳐 공룡의 시대가 되었다. 약 7,000만 년 전 백악기 말, 신생대 초에 K-T대멸종이 일어나 대부분의 공룡이 멸종의 길을 걸었고, 그 빈 생태적 공간을 포유류가 차지했다. 속씨식물은 1억 3,000만 년에서 9,000만 년 전부터 출현했고, 꽃가루를 날라주는 곤충과 함께 공진화하여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다. 인간은 600만 년 전 유인원과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현생인류로 발전했는데, 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맞추어 시계를 돌려보면 마지막 1초를 남겨놓고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화는 그럴듯한 하나의 이론이 아니고 과학적 사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지상 최대의 쇼』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는 평생을 창조론자들과 싸우며, 비과학적 신념들을 깨뜨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나같이 물렁한 생물학자는 왜 그런 힘든 싸움을 구태여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냥 진화는 사실이고 종교는 신념인데, 그 신념의 영역에 비이성이 게재되어 있다고 구태여 싸움을 벌여야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에 세게 붙었으니 이겨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허망해 보이기까지 한 세상에 이성과 진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관을 펼쳐주기 바란다. 우상에 대한 믿음 없이도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장소이고, 따뜻한 마음들로 채울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게 해주기 바란다. 진리가 너희를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리니…….

요청하신 텍스트에서 불필요한 페이지 번호, 줄바꿈, 띄어쓰기 오류, 그리고 깨진 글자(❹ → 통)를 모두 수정하여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1. 흐름을 유지하는 물질대사

·생명은 흐름이다·

우리는 매끼 밥을 먹는다. 식사를 하고 배설을 하는 물질대사가 생물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끼 식사량을 평균 200그램 정도로 보면 하루 600그램, 1년에 220킬로그램의 음식물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이 아니라면 우리 몸무게는 1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220킬로그램의 물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많은 양이 운동 에너지로 빠져나가고 일부는 배설된다. 말하고, 걷고, 뛰고 등등 다양한 운동 과정에서 내가 먹은 음식물의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특히 우리 뇌는 멍청히 앉아만 있어도 전체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소모하는 에너지 먹는 하마이다. 그렇다면 모든 음식물이 분해되어 에너지 형태로 소모되는 것일까?

내가 먹은 음식이 내가 되는 신토불이

일반적으로 몸의 체중이 무지막지하게 불지는 않으므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음식물이 에너지가 소비되는 과정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이가 독일 태생의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 루돌프 쇤하이머다. 그는 류신*이라는 아미노산을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지하여 음식에 섞은 다음 성체의 쥐에게 먹이는 실험을 했다. 방사성 표지가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해본 것이다. 그 결과, 실험 기간 동안 쥐의 체중은 거의 늘거나 줄지 않았고, 약 50퍼센트의 동위원소는 배설되어 사라졌지만 나머지 50퍼센트는 쥐의 체내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음식물이 에너지로 완전 연소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방사성 표지가 어디에 남았는지 확인해보니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다. 쥐의 신체를 구성하는 여러 성분이 방사성으로 표지된 것이다. 어떤 아미노산이 동위원소로 표지되었는지를 확인한 결과 류신뿐만 아니라 글리신이나 알라닌, 글루탐산, 메티오닌, 시스테인 등등 다른 20종의 아미노산들에도 방사성 표지가 나타났다. 이것은 류신이 장에서 흡수되어 바로 단백질합성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더 작은 분자로 분해된 다음 다시 아미노산 생합성 과정을 거쳐서 단백질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분해되었다가 다시 우리 몸의 일부로 재편성되는 것은 단백질이나 아미노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잉여로 투입되면 체지방으로 쌓일 것으로 생각되는 지방조차도 같은 실험을 해보면 우리 몸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속에 있는 원소들은 1년 뒤면 거의 다른 원소로 대치된다고 한다. 1년이 경과한 뒤 우리 몸을 살펴보면 우리 몸의 98퍼센트는 이미 다른 원소로 대체되어 있다.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으로 변하는 신토불이를 볼 수 있다.

동적 평형 상태의 흐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가 교체되는 속도는 사실 신체조직에 따라 다르다. 아마 가장 빨리 교체되는 조직이 피부일 것이다. 피부는 재빨리 생성되었다가 재빨리 사라진다. 그중 많은 양이 때의 형태로 밀려나간다. 이러한 순환이, 즉 새로운 세포로의 교체가 피부의 경우 약 6주 정도 걸린다. 간 조직도 비교적 생성과 소모가 활발해 2개월 정도면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고, 적혈구의 경우 약 4개월이 걸린다. 말하자면 4개월 뒤에는 내 피가 새로운 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가장 안 바뀌는 신체조직이 뼈이다. 그러나 뼈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서서히 새로운 뼈로 교체된다. 이런 관점에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생명을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하나의 흐름”이라 규정했다. 이를 좀 더 시각적으로 비유해보면 생명은 물질대사라는 흐름 속에서 일정한 형태가 나타나는 분수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분수는 물의 유입과 배출이 계속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지만, 사진을 찍어보면 뚜렷한 하나의 형태가 나타난다. 신기루처럼 여겨지지만 전혀 신기루가 아닌 ‘형태가 있고 만져보면 만져지는 실체가 있는 존재’가 분수인 것이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물질은 끊임없이 우리 몸속에 새로 들어오고 그전의 것들은 나가고 하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우리 몸에 잠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공과 색이 윤회하는 이 세상에 하나의 흐름으로서 잠깐 세상을 살다가는 것이 생명이 아닐까!

[사진 설명] 분수는 하나의 흐름이지만 그 흐름이 계속되는 한 일정한 형태가 유지된다.

물질대사는 흐름의 메커니즘

이러한 물질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물질대사이다. 생명체의 몸에서 일어나는 물질대사는 크게 동화(同化) 작용과 이화(異化) 작용이 있다. 한자어에 익숙지 않은 독자라면 이게 뭔말인고 할 것이다(언젠가 과학 용어의 한글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동화 작용은 생합성 과정을, 이화 작용은 분해 과정을 말한다.

생명체의 물질대사를 구축하는 세 가지 대사 회로가 캘빈 회로, 해당 작용, 크렙스 회로이다.* 이 세 가지 대사경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생합성과 분해작용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느냐는 순전히 화학적 법칙, 즉 반응물과 생성물 중 어느 쪽 농도가 높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말하자면 물질대사가 국소적으로 봤을 때는 생합성이 일어나기도 분해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마치 흐르는 분수처럼! 그래서 생명은 흐름이다.

쇤하이머 교수의 연구는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았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자기 복제 시스템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관은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보면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 시스템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만 이를 생명이라 정의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물질대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복제 시스템을 스스로 포기한 트랜스젠더를 생명이 아닌 무생물로 취급한다면 큰일 날 일이다. 그들은 엄연히 고귀한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다. 쇤하이머는 ‘생명은 자기 복제 시스템’이라는 생명관을 ‘생명은 동적 평형 상태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흐름’이라는 생명관으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한 복제기계가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인간,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 완성된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 흐름 속에 무엇을 채워넣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노력과 의지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길 속의 직소퍼즐

생명을 분수와 같은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면 그 아름답고 완벽한 대칭에 조각처럼 예쁜 생명체의 형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흐름 속에 있는 물체가 그토록 정교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절묘하게 제시한 사람이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이다. 그는 저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비결이 직소퍼즐에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저자는 생명을 동적 평형 상태의 모래성이라 비유했다.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이것이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원소로 구성되지만 내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는 이유이다.

직소퍼즐의 원리를 함께 생각해보자. 나는 가끔 휴가철이나 여가 시간에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을 맞추고는 한다. 최근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명화 퍼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간혹 직소퍼즐을 서너 달에 걸쳐서 맞추다 보면 중간에 한두 조각이 버뮤다 삼각지대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이럴 때를 대비하여 직소퍼즐 회사에서는 잃어버린 조각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퍼즐 상자에는 항상 우편엽서가 들어 있는데, 그 속에는 내가 잃어버린 조각이 무엇인지 묘사하여 보낼 수 있게 해놓았다.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조각이 어떤 조각인지 설명하기만 하면 공장에서 보내줄 것이다. 어떻게 설명할까? 하늘 배경의 흰 회오라기가 나선으로 돌아가는 부분이라고 설명할까? 아니면 좌표로 가로세로 몇 센티미터 부분의 조각이 빠졌다고 설명할까?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라.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에서 어떤 조각이 분실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이 문제의 절묘한 해답은 우편엽서 안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제조회사에서는 빠진 조각을 금방 알아볼 수 있게 잃어버린 조각을 둘러싸고 있는 여덟 조각을 우편엽서에 풀이나 테이프로 붙여서 보내라고 안내한다. 여덟 조각을 이어놓으면 잃어버린 조각이 어떤 것인지 금방 맞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간단한 해답이다. 직소퍼즐을 맞춰본 사람은 알겠지만 1,000개의 조각 가운데 모양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고흐의 그림을 보지 않고 거꾸로 뒤집어서 맞추어도 맞출 수 있다. 물론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이 작업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자폐아들도 있다고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질이 계속 특정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의 비법이 이러한 직소퍼즐 방식이라 설명한다. 조금 자세히 말하면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어떤 단백질이 낡아서 훼손되면 그 단백질은 빠져나가고 새로 합성된 단백질이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새로 만들어진 단백질 중 그 자리에 상보적으로 딱 맞는 형태를 가진 단백질이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다. 즉 잃어버린 직소퍼즐 조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생물체 내에는 단백질 간의 상호 작용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생물학적 경향은 빅 데이터를 창출하는 거대생물학이 주도하므로 조만간 포유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을 구성하는 단백질도 전체 단백질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는지 밝혀낼 것이다. 이러한 단백질 간 상호 작용 네트워크는 직소퍼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직소퍼즐은 단백질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거대분자들이, 나아가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전체 분자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그 형태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다만 직소퍼즐의 비유가 생명체에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직소퍼즐은 상보적 형태가 딱 맞춰지면 고정되어버리지만, 생명체의 직소퍼즐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유동적이다. 생명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기 때문에 새로운 분자가 들어오고 낡은 분자가 나가는 현상이 유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분자 간 상호 작용은 떨어졌다 붙었다를 되풀이할 수 있는 동적 평형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생명은 동적 평형 상태에서 직소퍼즐을 수행하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직소퍼즐을 수행하는 손은? 본문 1부 5장 〈생명의 레고블록〉에서 직소퍼즐을 수행하는 손이 단백질임을 설명할 것이다.

[참고 이미지] 직소퍼즐 고객카드 작성 요령 설명서

[본문 주석 모음]

  • 류신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20종의 아미노산 중 하나다. 아미노산에 대한 설명은 본문 1부 5장 〈생명의 레고블록〉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 캘빈 회로, 해당 작용, 크렙스 회로에 관해서는 본문 1부 7장 〈생명체의 현찰 에너지〉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 본문 1부 3장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결합〉에서 영화 〈트랜스포머〉 속 기계인간이 가능한지를 논의하면서, 생명의 다섯 가지 특성을 자세히 기술했다. 그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 2008년 10월 《사이언스》 저널에 효모균의 모든 단백질들이 세포 내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는지를 밝힌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Yu et al. (2008) High-quality binary protein interaction map of yeast interactome network. Science Vol. 322; 104-110.
  • 생명을 구성하는 거대분자 네 가지는 단백질, 핵산, 탄수화물, 지질이다. 이 중 생명에 기능을 제공하는 분자, 즉 생명체가 생명으로서 작동하게끔 하는 분자가 단백질이므로 단백질의 사례를 들었다.

전체 1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
1
admin | 2026.10.14 | 추천 0 | 조회 11
admin 2026.10.14 0 11